축제라는 항해, 그리고 우리 앞에 떠오른 것들
축제라는 항해, 그리고 우리 앞에 떠오른 것들
내가 일했던 축제들은 항해와 닮아 있었다. 바다에 오른 배는 저만의 생명을 지닌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배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눈이 번쩍 뜨이는 혁신,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그 발견을 마주하는 순간에 나는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갑자기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아마 나의 동료 선원들과 승객들도 그런 경험 때문에 매년 축제를 다시 찾아왔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싶고 또 그러한 세계를 만드는 것에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만드는 그런 항해였다. 목적지는 언제나 뚜렷한 좌표가 아니라 수평선 너머 어딘가였지만 바람의 흐름을 읽고, 별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방향을 수정하며 거침없이 나아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궤적이 꽤나 분명한 선으로 그려지곤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한 섬에서 모두를 만나기도 했다. 우연과 필연이 직조해 낸 이런 만남은 나름의 사건이 되어 예술사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았다. 항해 중에는 언제나 몸과 마음이 극한까지 치달았지만, 긴 여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피로보다는 그 짜릿함이 기억에 남았고 다음 해의 항해가 기다려졌다.
환경이 바뀌었다고 느낀 것은 다음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을 때였다. 정확히 무엇이 바뀌었다고 진단하기는 어려웠지만 “항해”라는 비유가 불러오는 낭만만큼이나 그에 따르는 그림자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거센 동력을 얻어 나아가는 배 위에서 예술가들의 작은 목소리들을 세심하게 듣기는 어려웠고, 흥미로웠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지나쳐야 했던 작품도 많았다.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섬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해변에 잠시 머물다 가는 관광객이었다. 섬에 사는 식물과 그들이 맺는 열매, 그곳에만 서식하는 동물종의 생태계를 세밀하게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축제 중에 쏟아지는 감각의 자극 속에서 관객, 예술가, 스태프 모두 저마다의 값진 경험을 했지만, 몰아치는 흐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단단한 과실을 수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축제의 빠른 리듬을 통과하고 나면 많은 사람이 허무함에 시달렸다. 축제라는 항해는 선원과 탑승객 모두에게 고된 경험이었고 매번 많은 자원을 과도하게 소진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시간이 끝나고 나면 많은 쓰레기와 갈 곳 없는 짐이 한가득 쌓였다. 축제가 만들어내는 집중력과 추동력은 여전히 소중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접어들고 있는 이 시대는 또 다른 방법론과 리듬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자각이 찾아들었다.
이를 비단 개인적인 차원의 피로감에서 비롯된 고민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팽창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장치들을 재고하기에 과연 이와 같은 축제의 형식이 유효한가라는 질문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흥분시켰던 세계 곳곳의 이야기는 자극적인 정보로 둔갑해 쏟아지고 있었고, 새로운 담론과 형식이 매 순간 생성되는 시대에 새로움은 오히려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아름다움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찰나의 순간이 가졌던 아름다움은 초 단위로 휘발되는 이미지의 폭격 속에서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전통과 위계를 허물었던 전복적인 실험들은 이미 누구나 자신을 예술가로 표명할 수 있게 된 사회 속에서 초과 달성한 사명이 되었다. 거듭된 해체와 혁신 속에서 “혁명”은 허풍처럼 여겨졌다.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한 표어로 치부되거나 예술을 사회복지 정책의 도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간의 축제가 전복과 실험을 거듭하며 새로운 지평을 향해 항해를 이어갔던 탐사선이었다면, 어느새 우리는 탐사선의 존재 이유와 방식을 질문할 수밖에 없는 시간 위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오늘날 축제가 존재해야 한다면, 그 지향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어떤 축제의 형식과 경험이 오늘날 유효한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새로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방법은 무엇일까? 아직 예술에 미래를 그릴 힘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발밑을 허무는 질문들이었지만 이를 무릅쓰고 옵/신 페스티벌을 시작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우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손에서 놓아버리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며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거대한 빙하를 거침없이 쪼개고 나가는 쇄빙선이나 혁명의 대포를 장착한 범선이 아니라 작은 얼음 조각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갈 수 있는 북극 선주민들의 카약이 되어야 했다. 깨부수어야 하는 대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모순들을 직접 손으로 더듬으면서,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빈 공간으로 노를 저을 때마다 흔들리면서, 계속해서 숨을 돌리며 물길을 되돌아보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옵/신이 만들어 내는 것은 축제의 열광보다는 느린 호흡과 밀도 있는 시간이어야 했다.
옵/신 페스티벌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이던 2020년 가을에 첫 회를 맞이했다. 많은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적막 속에서 조심스럽게 길을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 얼어붙은 세상이 적격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공유하고 경험할 것인가라는 옵/신의 질문은 공교롭게도 나라 간 이동이 불가능하고 극장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반드시 대면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되었다. 장(scene)으로부터 / 벗어나다(ob)라는 이름이 함의하듯, 첫 옵/신 페스티벌은 많은 관객이 모일 수 있는 극장보다는 일상에 맞닿아 있거나 내밀한 공간을 찾았다. 대규모의 관객을 압도하는 경험을 만드는 대신 일상 곳곳에 작은 시공간의 어긋남들을 만들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변의 장이 생겨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를테면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메테 에드바르센의 <오후의 햇살 아래 시간이 잠들었네>에서는 “살아있는 책”이 된 퍼포머가 관객과 단둘이 만나 자기가 발견한 장소로 관객을 인도해 암기한 책을 들려줬다. 극장 공간 대신 특정한 시간에만 해가 비추는 비상구 계단이나, 비행기가 잘 보이는 2층의 창가, 버리려고 내놓은 화분이 모여 있는 창고 한켠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 작품에서 책을 읽는 3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관객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빨리 감기를 할 수도 없었고 오직 나만을 위해 내주어진 시간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에 급급하거나 얕은 자극을 좇는 대신 가만히 소리를 따라가며 생각이 표류하는 경험 속에서 가장 내밀한 보살핌의 세계가 열렸다. 책은 독자가 자신을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였고, 독자는 문장을 복기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선 책을 기다리며 이 여정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다했다. 겉으로 발화되는 것은 책 내용이었지만, 그 아래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낯선 교감 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여느 한낮에 평범한 극장 귀퉁이에 생겨난 이 시공간에서는 새로운 윤리의 실천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텐 스팽베르크의 <그들은, 배경에 있는, 야생의 자연을 생각했다>는 두 명의 무용수가 한강 나루터나 가족공원, 덕수궁 돌담길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해 질 녘에 추는 춤이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빛은 나무와 물결을 매 순간 다른 색으로 물들였고 무용수들은 그사이에 섞여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이 작품은 그 어느 블랙박스 극장보다도 현실과 가까운 곳에서 현실로부터 비켜난 시공간을 만들어 냈다. 무조건적인 집중을 요구하는 무대예술의 특권적인 지위는 사라졌지만, 그 느슨해진 공백 속에서 관객은 기우는 해를 보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감각하거나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을 어렴풋이 감지하는 저마다의 실험을 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이나, 아파트 유리창에 비치며 깜빡이는 빨간 불빛, 떨어지는 낙엽 등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과 자연이 우리의 감각 체계로 들어오며 우리가 이 세계와 연결된 촘촘한 그물망을 드러냈다. 같은 시각, 유럽에서도 두 명의 무용수가 공원에서 춤을 췄다. 이 4중주 안무는 대륙을 가로질러 연결된 존재들을 상상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었다. 공공의 장으로서 극장이 기능하지 못하는 시기에 작품은 다른 방식으로 생태계를 지각하게 하며 예술이 그 자체로 공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했다.
첫해의 옵/신은 사회의 속도에 편승하는 대신 느림과 무위의 감각을 이어 나갔다. 대부분의 작품은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린 변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각을 우위에 두는 현대 사회에서 뒤켠으로 밀려났던 몸의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덕수궁 정관헌에서 열린 황수현의 <음—>에서 움직임은 눈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동으로 와닿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앉은 퍼포머가 내는 소리와 그 진동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편리하고 익숙한 인과와 이해의 방식을 넘어서서 이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감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눈에 머무르는 대신 세계의 파동의 일부가 되어 함께 진동해 보는 경험이었다. 재건축을 앞둔 밀가루 공장에서 열린 남정현의 <장막> 역시 느리게 사라지는 빛을 감각하며 어둠에 침잠하는 작품이었다. 해 질 녘에 시작해서 완전히 어두워지면 끝나는 이 공연에서 관객은 구멍 뚫린 천장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궤적을 좇았다. 빛이 서서히 잦아들고 어둠이 밀려 들어오는 과정을 오랜 시간 바라보는 일이 어떤 유용한 깨달음을 발생시켰는가 질문한다면 답할 수 없겠지만, 정확히 그 무용한 시간의 흐름이야말로 매 분, 매 초에 값을 매기는 현대 사회에서 희소한 감각을 선사했다.
두 번째 옵/신 페스티벌은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보는 것에 주력했다. 한 편의 공연으로만 작가를 만났던 과거의 축제 형식 대신 글, 토크, 영상, 전시, 워크숍 등 한 작가를 여러 형식과 각도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공연만으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작가의 생각을 공유했다. 작가가 공연을 위해 잠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모색했다. 7시간 3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가진 라브 디아즈의 <멜랑콜리아>나 공원에서 진행된 마텐 스팽베르크의 <춤추는 공동체>는 첫 번째 옵/신 페스티벌의 작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질적인 시공간의 감각을 만들어 냈다.
나는 이 조금씩 비켜난 시공간 속에서 세계가 다른 속도로, 다른 감각으로 작동될 수 있음을 보았다. 낯선 이의 목소리에 졸린 눈을 감고 나를 온전히 내맡기는 일, 곧 허물어지게 될 어느 시간의 귀퉁이를 잠시 움켜쥐는 일,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 한 가운데서 궁궐의 소나무 사이를 오가는 작은 생명들에 집중하는 일. 내게는 예술을 경유해 마주하게 된 이런 경험들이 무엇보다 강력한 윤리적인 실천처럼 느껴졌다. 정보, 의미, 경쟁, 속도, 가치 등 오늘날 우리 사회를 작동시키는 지배적인 원리들에 맞서는 작지만 단단한 저항이었다. 과거의 거침없는 항해가 우리에게 낯설고 이국적인 세계를 보여줬다면, 지금은 우리가 떠 있는 바다의 물결을 하나씩 헤아리며 그 아름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 그 결 사이로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어떤 세계가 비치길 바라는 기다림에 가까웠다.
이러한 실천이 가능한 것은 공간, 공연 회차, 공연 시간, 관객 수, 장르 등을 모두 뒷전에 둘 수 있는 작은 축제의 특권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예술 환경 속에서 이 특권을 이어 나가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 금세 명확해졌다. 예술 분야의 공공 기금은 규모와 팽창의 논리로 운영된다. 관객 수와 작품 수, 예술가 수, 해외 예술가 수, 티켓 판매액 등 정량적인 지표가 중요한 평가 대상이 되었고 그 증가율이 다음 해 축제 예산을 결정했다. 축제의 공공적 가치는 얼마나 많은 시민에게 얼마나 많은 작품을 선보이고, 얼마나 좋은 설문 평가를 받는가로 결정되었다. 수치로 평가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점점 커졌다. 다음 해 예산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예술가와 긴 호흡으로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은 옵/신 페스티벌 역시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관객 규모를 키우고, 작품 수를 늘리고, 그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기금에 지원해야 하는 팽창적인 나선에 동참해야 했다.
물론 예술과 축제를 둘러싼 모든 문제가 구조적인 시스템의 문제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공적 지원을 받는 예술 단체가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받는 것은 마땅하다. 옵/신 페스티벌이 출발점에서 했던 고민 역시 오늘날 예술이 할 수 있는 공적 역할을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행정적으로 규격화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틀 너머의 가치와 존재 방식, 세계와의 관계 맺기를 실험할 수 있는 장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3회를 마친 옵/신 페스티벌은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질문을 안게 되었다. 규격화된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초기의 고민들을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구조의 힘을 빌릴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축제의 공적 지원에 대한 의존성과 지속성, 자생적 힘, 자율성은 어떤 균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기존의 축제 형식을 보다 시의성 있는 형태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 소수를 위한 지적 유희로 축소되지 않으면서도 내밀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번에 그 해답을 찾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질문조차도 계속해서 수정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노를 저을 때마다 흔들리는 얼음 조각들의 진동과 공명하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향한 항해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파도 속에서 떠오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