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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연극의 비교론에 대한 동시대 공연의 시사점 본문
영화와 연극의 비교론에 대한 동시대 공연의 시사점
1. 서론
앙드레 바쟁은 『영화란 무엇인가What is Cinema』에서 “연극과 영화”라는 별도의 장을 할애하여 연극에 대비되는 영화의 본질적 특성을 살피고 있다. 그는 연극 무대를 그대로 촬영으로 옮긴 ‘영화화된 연극filmed theater’을 비판하며 영화가 연극의 미학 논리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인 언어로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연극을 미학적 절대값으로 상정하고 영화는 연극에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근접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최적의 환경에서 모든 조건을 충족하여도 그 충직한 하인이 되는 것에 그친다고 보았다”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바쟁의 논의에서 연극은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확립된 견고한 예술 체계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특기할 만한 것은 이어지는 바쟁의 예지적 주장이다. 그는 영화가 불러온 미학적 변화와 사회학적 변화가 결국은 연극의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고 예지한다. 여기서 미학적 변화란, 영화에서 줌인으로 등장인물의 눈물을 강조한다거나 목소리를 마이크로 확성하는 것에 관객들이 익숙해질수록 비극 배우가 시도하는 재현의 핍진성은 우스꽝스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학적 변화란, 공연계 스타를 일컫는 소위 신성한 괴물monstre sacrè의 입지가 온전히 영화배우에게로 넘어가면서 그간 연극에서 비극배우가 점하던 압도적 권위도 쇠락하게 될 것을 말한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영화와 연극의 관계는 전도된다. 수잔 손탁이 1966년 <툴레인 연극 리뷰The Tulane Drama Review>에 기고한 “영화와 연극”이라는 글에서 지적하듯, ‘오늘날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영향의] 방향은 전적으로 일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에서 연극으로.’ 바쟁 시대의 논의가 영화는 어떻게 연극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성을 확립할 수 있을까였다면, 60년대 이 논의는 역으로 영화/영상 미디어의 헤게모니 시대에 연극은 어떻게 적응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로 전환된다. 뉴욕의 실험연극을 필두로 포스트드라마 연극, 이미지 연극, 다큐멘터리 연극, 미디어 연극, 장소특정적 연극 등 지난 50년 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연극 형식의 실험과 전복은 최소 500년 이상 유지되어 온 프로시니엄 극장 중심의 재현 연극이 그 견고한 입지를 빠르게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영화가 확보한 대중성과 예술 언어로서의 입지와 더불어 영상 매체가 야기한 현대인의 지각 방식 변화는 그러한 과정을 촉진하는 중요한 촉매로 기능했다. “영화가 코메디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연극도 그 본질적 성격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면, 역으로 영화가 연극의 고유한 테크닉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연극에 새로운 삶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바쟁의 예언처럼 연극은 연극의 본질을 고민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언어를 모색해나가기 시작했다.
본 연구는 60년대 이후 연극계에서 일어났던 주요한 혁신으로 인해 연극의 본질적인 성질이라고 규정되었던 요소들이 어떻게 해체되었는가를 살핌으로써 과거의 영화와 연극에 대한 매체 비교가 여전히 유효한가를 질문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에르빈 파노프스키, 앙드레 바쟁, 수잔 손탁이 주목한 영화와 연극의 차이 중에서 1) 드라마 텍스트 2) 몽타주 3) 무대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에 주목하고, 60년대 이후 각각의 범주 내에서 연극이 어떠한 방식으로 형식적 전복을 이루어냈는지를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과거의 비교 준거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면, 오늘날 영화와 연극은 어떠한 역학 관계로 공존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2. 영화와 연극의 비교 연구 사례
영화와 연극의 차이를 규명하려는 연구는 영화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그 자료는 방대하다. 대체로 초기 연구는 연극의 정통성을 고수하기 위해 영화의 매체적 성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미국의 시인인 바첼 린지는 1916년 『영화의 예술The Art of the Moving Picture』중 “포토플레이와 무대 간에 존재하는 30가지 차이점”이라는 장에서 영화가 연극보다 관객의 수가 적기 때문에 관객 반응이 미약하다거나, 연극에서는 금기인 풍경(세트)이 인물을 압도하는 현상이 영화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거나, 연극 무대는 화각이 넓지만 영화는 좁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극을 대변하기 위한 주장을 이어나간다.
보다 체계적으로 두 매체를 비교하기 시작한 것은 예술 언어로서 영화의 입지를 구축하려고 했던 이론가들이다. 1934년 예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영화에서 양식과 매체”라는 글에서 영화가 예술로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며 영화만의 고유한 특징을 ‘공간의 역동화’와 ‘시간의 공간화’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연극에서 공간은 정지되어 있고 관객과 무대의 거리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관객 눈이 카메라의 렌즈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카메라에 따라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편집 기술로 역동적인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연극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독백 등의 대사로 처리하는 반면, 영화에서는 환영, 사라짐, 느린 동작, 빠른 동작, 역동작 등 공간의 편집을 통해 다양한 시간적 변형이 구현된다. 영화의 이 두 가지 측면으로 인해 연극에서는 ‘말’ 중심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사유와 감정이 영화에서는 시각적 움직임으로 다양하게 전달될 수 있다. 등장인물의 시각을 관객의 눈과 동일시함으로써 그 등장인물의 의식과 심리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며, 클로즈업으로 말과 더불어 인간의 표정/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
앙드레 바쟁은 앞서 언급한 “연극과 영화”라는 글에서 연극과 영화의 차이를 깊이 있게 살피고 있다. 논의는 리얼리즘에서 시작된다. 바쟁이 봤을 때 영화의 본질인 리얼리즘과 연극의 본질인 인위성, 환영성은 양립할 수 없는 대척점에 있다. 아무리 무대를 현실 그대로 구현하는 사실주의 연극에서도,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그것은 일상에서 분리되어 쇼윈도에 전시된 현실이 되고 만다. 또한 연극을 지배하는 텍스트에는 이미 작품의 모든 양식과 스타일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텍스트를 차용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연극적이 되어버린다. 두 번째 문제의식은 미장센과 관련되어 있다. 연극에서는 배우에서 출발해 드라마가 전개되는 반면, 영화에서는 미장센 즉 배경에서 배우로 이동한다. 이는 물론 영화가 연극보다 자연과 환경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무대 위에 건축물이 존재해야 하고, 이는 자연과는 대조되는 무엇이어야 한다. 바로 이 세트는 드라마가 발생하는 구심점이 되며, 모든 행동은 무대 전면을 향해 관객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인간은 그것의 중심이 된다. 영화의 경우 구심점도, 전면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크린은 일부 행위를 볼 수 있게 주변을 가리는 장막 같은 것이며 현실은 그 너머로 무한히 펼쳐져 있다. 여기서 인간은 중심이 되지 않는다.
수잔 손탁의 경우 파노프스키가 영화와 연극을 구별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던 연극 공간의 경직성이나 대사, 언어에 대한 의존도가 영화에 적용된다고 해서 그 영화가 반드시 ‘연극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것은 진정한 구분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손탁이 보기에 핵심적인 차이는 공간의 구성방식, 즉 몽타주이다. 연극은 공간을 연속적으로 구성하고, 영화는 공간을 불연속적으로 편집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연극이 할 수 없는 이미지의 반복, 복제, 중첩, 병치 등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닌다. 또 다른 주요한 특성은 영화의 결과물은 ‘사물’이고 연극의 결과물은 ‘공연’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영화는 살아 있지 않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므로 감독에 의해 완벽하게 계산되고 통제되고 이후 무한히 복제, 유통될 수 있는 반면, 연극은 매회 공연에 따라, 배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남는다.
이 외에도 이야기의 형식, 배우의 연기 방식, 관객의 지위 등을 비교하며 영화와 연극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으려는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그러한 요소 중 일부는 영화의 내부적인 실험을 통해 더 이상 유효하게 되지 않은 것도 있고, 유행 또는 현상일 뿐 각 예술 형식의 본질적인 특성을 포착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광범위하게 다루는 대신 이론가들의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 중 연극이 60년대 이후 꾀한 형식적 전복으로 인해 그 구분이 더 이상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은 세 가지 측면, 즉 1) 드라마 텍스트 2) 몽타주 3) 무대에 주목한다.
3. 영화-연극의 전통적인 비교 준거와 연극의 변화
3.1 ‘텍스트’와 포스트드라마 연극
앞서 보았듯 파노프스키와 바쟁은 모두 연극은 드라마 텍스트, 즉 희곡이 중심이 되는 예술이라는 전제를 상정하고 있으며, 영화가 드라마 텍스트에서 벗어나 시각 이미지 중심의 표현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그 차별성을 획득했다고 본다. 실제로 르네상스 이래 이성과 언어를 통해 현실을 독해하고 재현하려고 한 로고스 중심적 세계관 아래에서 수백 년간 서구 연극을 지배해 온 것은 내면의 상상 대신 물리적인 사실성을 강조하는 원근법 무대와 문학과 언어적 재현이 중심이 되는 연극, 즉 ‘드라마 연극’이었다. 이경미 평론가는 “[드라마] 연극이 희곡의 언어라는 재현적 매체에 고스란히 종속되면서, 말과 소리, 배우의 몸, 음향 및 조명 등 기타 연극의 다른 매체들은 각각의 그 본래적인 물질성을 상실하고 문자매체의 너머로 사라졌다”고 말한다.
파노프스키와 바쟁이 영화와의 비교 대상으로 상정했던 드라마 연극은 1960년대에 시작하여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부정되기 시작한다. 사진,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텔레비전 등의 영상매체가 일상에 편재하게 되면서부터 문자매체의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사람들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 변화했다. 자연스럽게 희곡이라는 텍스트의 재현적 능력에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1970년대 드라마 텍스트의 충실한 전달이라는 전제가 적용되지 않는 연극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개념이 대두된다. 한스-티스 레만이 『포스트드라마 연극』(1999)에서 정립한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동시대 연극의 양상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담론 중 하나이다.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는 텍스트의 지배적 우위가 해체되며 몸짓, 음악, 소리, 빛, 무대 등 다양한 연극적 수단이 탈위계화되어 동시적으로 상호작용한다. 또한 그러한 매체들의 “물질성 자체가 미적 경험의 대상이 된다.” 또한 드라마 연극이 상정했던 전체성, 환영, 꾸며낸, 허구적 세계 대신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 것’에 주목한다. 포스트 드라마 연극에서 나타난 텍스트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 매체의 혼합성에 대한 강조, 현실을 포착하고자 하는 의지 등은 영화 매체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많은 부분 중첩된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이미지 연극의 대가로 꼽히는 로버트 윌슨의 경우, 실제로 “자신의 이상적 연극은 무성영화와 청취극의 통합이라고 밝힌바 있다.” 기존 연극에서는 풍경이 텍스트(사건, 인물 등)를 압도하는 것이 절대적 금기였던 반면, 윌슨은 어떤 인물이나 서사를 묘사하려고 시도하는 대신 연속되는 이미지를 생성하여 관객의 의식에 파노라마적 풍경과 연상공간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또한 그에게 있어 배우, 텍스트, 조명, 음향, 무대 등 모든 연극적 수단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물질적 기표”이자 새로운 미학적 지각 경험을 선사하는 수단이다. 윌슨의 대표작이자 1976년 초연되었던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공연)은 오직 세 가지 주제 이미지, 즉 기차-빌딩, 법정-침대, 야외-우주 이미지의 반복과 변주로 5시간 동안 진행된다. 윌슨은 이미지, 음악, 무용, 조명, 무대 등 각각의 독립적인 요소를 대등하게 병치한다. 간간히 등장하는 텍스트는 자폐 환자인 크리스토퍼 노울즈가 쓴 것으로,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운 인상 나열에 불과하여 다른 어떤 요소에 비해서도 우위를 지니지 못한다. 이미지들은 풍경화와 정물화, 초상화의 구도를 오가며 시공간을 확장하는데, 이는 영화가 출발 당시부터 선취했던 시청각적 감각 경험과 닮아있다.
한편, 윌슨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개념에 접근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이 있다. 앞서 영화와 연극을 비교한 이론가들은 연극이 본질적으로 환영성에 기초하며, 이 때문에 영화가 수행하는 ‘현실의 복제’가 연극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연극의 환영성을 거부하고 현실을 포착하려는 시도로 다큐멘터리 연극이 등장했다. 20세기 초에는 현실의 다큐멘트(자료)를 활용하여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팩트의 연극’ 형식으로 나타났지만 오늘날 소위 ‘뉴다큐멘터리 연극’는 여전히 미디어, 다큐멘트를 활용하여 실재를 매개하는 형식을 띠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연극 내 허구와 재현의 경계에 관해 메타적으로 질문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고전적인 연극에서 재현된 세계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간극을 관객의 완벽한 몰입과 동일화(identificatio)를 통해 좁히고자 했다면, 최근의 다큐멘터리 연극은 예술형식과 수용경험을 통해 현실을 환기하고 확장시키는 허구화의 과정을 수행하는데 주목한다. 이를 통해 다큐멘터리 연극은 재현된 연극적 환영으로서의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화를 통해 현실세계를 구성한다.”
독일의 극단 쉬쉬팝의 <유서(Testament)>(2012년 페스티벌 봄 공연)는 오히려 허구적인 고전 텍스트(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개입시킴으로서 그 허구성을 노골적으로 폭로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폐하께서 납시옵니다”라는 대사와 함께 쉬쉬팝 단원들은 자신의 친아버지를 무대로 불러들인다. 아버지들에게는 노쇠한 리어왕 역할이 주어진다. 『리어 왕』을 각색하겠다던 초기의 목적은 사라지고, 희곡의 대사들은 오히려 현실의 부녀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현실 사안에 대한 논쟁을 촉발한다. 유산 상속, 아버지 부양책임, 가사 노동의 분담 등 『리어 왕』의 주제를 부녀간의 사적인 문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실재와 허구는 팽팽하게 양립한다. 리어 왕의 죽음에 이르러 치러지는 모의 장례에서 아버지들은 관 속에 들어가 눕는다. 연극이라는 허구 장치 속에서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현실의 무게가 다시금 엄습한다. 이처럼 다큐멘터리 연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이 근본적으로 허구를 직조하는 장치가 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냄으로서 역으로 현실을 포착하고 성찰하게 한다.
드라마 텍스트가 지배하는 모방 예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청각적 지각 경험을 선사하고, 현실을 포착하려는 이와 같은 포스트드라마의 시도로 인해 일견 영화와 연극의 본질적 구분이 흐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포스트드라마는 무엇보다도 다른 매체와 구별되는 연극의 고유성에 대한 탐구이자 실천이다. 수잔 손탁이 지적한 바, 연극은 생산물을 도출하지 않는 단 한 번의 경험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으며 포스트드라마 역시 이와 같은 연극의 고유성을 고민하며 발전하였다.
“사물(object)이 있는 모든 예술, 그리고 생산되는 매체를 통해 소통하는 모든 예술들과 달리, 연극에서는 심미적 행위 자체(공연한다)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실제로 무언가를 하는 수용 행위(공연장에 간다)도 발생한다. 그러므로 연극이란 공연과 관극이 동시에 발생하는 공간을 호흡하면서 공연자와 관객들이 함께 삶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3.2 ‘몽타주’와 상호매체성 연극
숏과 숏의 병치를 통해 시공간을 자유롭게 직조하고 다양한 의미를 발생시키는 몽타주 기법은 영화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꼽힌다. 파노프스키는 영화의 ‘공간의 역동화’와 ‘시간의 공간화’ 능력을 강조했으며 손탁은 시간과 공간의 불연속적 편집이야말로 연극은 할 수 없는 영화만의 능력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평면적이고 단일한 무대를 배경으로 선형적인 서사가 등장인물의 발화와 행위 중심으로 전개되며, 관객은 무대를 고정된 거리에서 보게 되는 고전적인 드라마 연극을 전제로 한다. 이런 연극에서 시간, 공간, 행위는 단일한 연속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1980년대 상호매체성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연극 시도들이 전개되며 이러한 전제는 급격히 전도된다. 좁은 의미에서의 상호매체성 연극은 무대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연극 제작 과정에서 카메라,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매체를 도입한 연극을 말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의 상호매체성은 “하나의 매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미적관습 및 보기, 듣기의 습관이 전혀 다른 매체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실현되고, 궁극적으로 이것이 지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상호매체성 연극의 등장 배경으로는 제이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이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에서 서술하고 있는 비매개immediacy와 하이퍼매개hypermediacy 간의 위계 전환을 들 수 있다.
“비매개는 재현 행위를 지우거나 자동화하려는 논리라면, 하이퍼매개의 논리는 다중적 재현 행위를 인정하고 그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 하이퍼매개의 논리 하에서 매개의 신호는 계속해서 늘어나며, 인간 경험의 풍부한 감각체계를 재생산해낸다. 어떤 형태로든 하이퍼매개는 미디어를 인식하도록 해주며, 나아가 비매개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환기시켜준다.”
르네상스 이래 고전연극의 주된 목표는 관객이 작품의 환영에 투명하게 몰입할 수 있는 완벽한 무매개성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더니즘 이래 매체 자체를 인식하고 인정하려는 시도가 모든 예술 매체에서 나타나며 무매개의 문화적 지배력은 도전을 받는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하이퍼매개에 대한 욕구가 무매개의 욕구를 넘어서는 현상이 발생한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일하고 고정된 시야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를 동시적으로 도입하고, 매체를 노출시키고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게 하려는 상호매체성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상호매체성은 다양한 매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서 통일과 조화, 투명성 보다는 다양성, 불일치, 매체 간의 상대적 독립성 및 볼터와 그루진이 말한 의미에서의 하이퍼매체성과 연관이 있다.” 한편, 랄프 렘샤트는 특히 영화 출현 이후의 지각 방식 변화가 연극에서도 위와 같은 동시적 지각 경험을 추구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영화는 출현 이래 빠르게 재현의 규범 모델로 자리 잡았고, 영화 문법이 시각적 담론에 통합됨에 따라 영화의 불연속적 몽타주 이미지에 익숙해진 관객으로 하여금 연속적 무대 이미지를 기피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즉, 현대인의 지각 방식이 ‘무대보기’로부터 ‘카메라보기’로 전환되면서 연극 역시도 영화적 문법을 도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요구를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벨기에의 극단 FC베르히만의 <300EL X 50EL X 30EL>은 영화적 문법과 몽타주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상호매체적 연극이다. 무대에는 사실적인 전나무 숲 속 어느 공터에 북유럽 풍 오두막집 여섯 채가 둥글게 모여있다. 집을 둘러싼 트랙으로는 카메라가 돌고 있고, 카메라가 찍는 것은 무대 가운데 큰 스크린으로 송출된다.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 마을의 주민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닥치게 될 홍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각각의 6개 집 안에서는 소소하지만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집에서는 한 소년이 계속해서 비둘기를 죽이고 있고, 다른 집에서는 다트 게임이 점점 불길한 결말로 치닫는다. 관객은 각각의 집 안에서 전개되는 사건과 그들 간의 연결고리를 카메라를 통해 내밀하게 본다. 카메라가 각각의 집을 포착하는 순서, 트랙을 도는 속도(천천히 돌다가도 어지러울 정도로 빨리 움직인다), 집 안을 들여다보는 각도와 줌인/아웃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이 마을과 그 주민들을 조망하게 된다. 어떤 사물은 더 크게 과장되어 그 추악함을 드러내고, 어떤 인물에 대한 강조는 단서가 되며, 서로 다른 두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연달아 보여질 때 새로운 인과 관계가 나타난다. 엄밀한 의미의 ‘영화편집’은 아닐지라도 각각의 요소들이 연속적으로, 대립적으로, 또 중첩되어 보여지면서 시공간이 불연속적으로 배열되는 몽타주 효과가 발생한다. 또한 마을의 공터에 등장한 외부 침입자 등 무대 위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장면과 카메라로 송출된 스크린 속 이미지와의 병치도 기묘한 대립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각각의 요소가 서로 다른 강조점을 통해 비춰지고, 장면의 병치로 서사가 전개되고, 관객이 다양한 거리와 관점으로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몽타주를 통해 실행하는 효과들이 적극적으로 연극에 도입된 사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만은 이와 같은 연극에서의 몽타주는 영화적 몽타주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영화에서는 시선의 결정권이 카메라에 있다면, 연극에서는 여전히 “시선을 초점화 할 것인가, 초점화한다면 어떻게 초점화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편집을 수행하는 것이 결국 관객”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상호매체성 연극에서 관객의 눈은 영화에서처럼 카메라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연극에서의 ‘개방적 장면 몽타주’는 카메라, 스크린, 무대, 배우 등 무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공간에 대해 보다 다양한 관점이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관객이 각각의 요소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열어준다.
3.3 ‘무대’와 장소특정적 연극
바쟁은 연극과 영화를 비교로 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현실과 극을 분리하는 이질적이고 인공적 건축물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연극에서 프레임으로 기능하는 “무대 세트의 양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언제나 실질적으로, 그리고 가상적으로 자연과 분리된, 특권적인 공간을 규정하기 위해 존재해왔다. 이러한 세트의 역할은 드라마의 중심을 창조하는 데에 있다. 세트는 삼면으로 막히고 나머지 한 면은 관객을 향해있는 공간, 즉 우리가 무대라고 부르는 공간을 구성한다.” 레만 역시 전통적인 연극에서 “극적 공간은 항상 총체성으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분리된 상징으로 머무르며, 세계는 파편의 일부로 제공된다.”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영화에서의 프레임은 창문, 가리개로 비유되는데, “창문은 외형적인 틀에 의해 벽의 다른 부분과 구분되지만,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는 우주 안으로 연장된 것으로서 그 세계는 창문과 벽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창문은 우주의 일부분만을 떼어 내어 그 내부를 현실 세계와 대립시키는 프레임이 아니라 우주를 향해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이와 같은 ‘드라마 공간’이 극장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뉴욕, 리처드 셰크너의 환경연극, 저드슨 댄스 시어터 등을 필두로 하는 아방가르드 공연예술 움직임 속에서 전통적인 극장 공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전개되었다.
“실험연극은 언제나 다른 공연 장소를 모색해왔다. 이는 단순히 편리성 때문이 아니라 극장이 재현의 중립적인 용기(vessel)라는 통념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오히려 극장이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과 일정 거리를 두게 하고 그들을 말 그대로 ‘제 자리에,’ 즉 모든 눈마주침과 상호작용이 차단된 채 어두운 곳에서 일렬로 앉아있게 만드는 지배적인 담론을 위한 공간적 장치라고 봤다.”
극장의 공간적 위계에 대한 자각 외에도 관객의 능동적 해석과 지각 경험을 강조하는 포스트드라마, 20세기에 (우주로까지) 급격히 확장된 현대인의 공간 감각, 신자유주의 질서 속 공공장에 관한 논의 등은 모두 ‘장소특정적site-specific 공연’ 담론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꼽힌다.
장소특정적 연극에는 여러 종류와 층위가 있고 그것을 단일한 정의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실 세계의 어떤 장소에서 구상되고 공연되는 연극을 말한다. 어떤 형태로든 장소특정적 연극은 이질적이고 분리된 공간을 상정하는 대신 극을 현실 공간에 배치시킴으로서 장소, 관객, 배우의 현존에 관한 성찰을 시도한다. 또한 연극이 현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허구적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포착하고, 현실에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언어, 더 나아가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고 다시금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투과성 높은 예술임을 증명하려 한다. 아르헨티나 연극 연출가 마리아노 펜소티의 <가끔은 널 볼 수 있는 것 같아(Sometimes I think, I can see you)>(2012년 페스티벌 봄 공연)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진행된 장소특정적 연극이다. 작가 김연수, 시인 강정, 한겨레21 기자,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등 네 명이 게스트작가로 참여하여 기차 대합실에 있는 행인을 지정한 뒤 그 사람에 대한 가짜 바이오그래피를 써내려가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송출되었다. ‘검정 츄리닝을 입은 남자는 명상을 하면서, 사실 꿈도 꾼다.’ 자신에 관해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 깨닫고 당황하며 서둘러 사라지는 사람들, 또 그 자리에 앉아 다른 행인들을 함께 관찰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 연극은 현실 그 한 복판에서 현실을 재료 삼아 현실을 교란한다. 이와 같은 공연은 연극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그것은 일상에서 분리된 쇼윈도 전시가 된다고 보았던 바쟁의 서술을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장소특정적 연극은 영화가 그러하듯 고정된 무대 프레임 대신 무한히 확장된 현실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독해하고 반영하려고 한다. 그러나 장소특정적 연극은 공연이 되는 순간 해당 장소, 즉 현실에 실시간으로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며 이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한다. 또한 관객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장소특정적 연극에서는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속성을 지닌 공간과, 주관적 기억과 경험구조를 가진 관객들이 역동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며” 일시적인 사회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장소특정적 연극은 그 어떤 리얼리즘 영화에 비해서도 더 즉각적이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현실에 개입한다.
4. 결론
본 논문은 지난 20세기, 영화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빈번하게 차용되었던 연극과 영화의 차별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영화학자들의 논의에서 대립항으로 상정되는 연극은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희곡을 재현하는 전통적인 연극에 국한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정립되어 수백 년간 헤게모니를 유지해온 희곡 중심의 재현 연극은 1960년대 이후 다각도에서 도전을 받았다. 위계적인 극장이 아닌 제철소에서 공연되거나, 관객이 공연 중에 무대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희곡은 물론 대사조차도 없이 진행되거나, 심지어 인간 배우 대신 수십 톤의 동물 뼛가루가 대신 연기를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연극’이 자유롭게 실험대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희곡의 절대적인 권위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관객과 시공간의 고정된 거리는 파괴되었고, 극장 공간의 위계 역시 전복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영화와 연극의 여러 비교점을 1) 드라마 텍스트 2) 몽타주 3) 무대라는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연극에서 등장한 세 가지 경향을 통해 각 범주의 유효성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20세기 영화 이론가들이 연극의 본질적 요소라고 보았던 요소들은 지난 50년 간 대다수 약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더는 영화와 연극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준거점으로 기능할 수 없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기존의 연극적 관습이 이처럼 도전받게 된 맥락을 간략하게나마 추적해보았다. 먼저 영상 매체가 등장함에 따라 언어 매체의 위계가 약화되었고, 연극이 희곡의 사실주의적 재현이라고 보는 관점 역시 도전받게 되었다. 60년대 이후 등장한 “포스트드라마적” 담론은 공연과 관극의 심미적 경험이 동시에 현시하는 현상이야말로 연극의 본질이라고 보는 다양한 시도들을 아우른다. 한편, 재현과 현실 사이에 투명한 매개를 추구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무매개적 미학은 모더니즘, 더 나아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하이퍼매개에 대한 욕구로 전환된다. 다양한 매체를 드러내고 상호작용하려는 경향이 연극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상호매체적 연극은 몽타주, 줌인-줌아웃 등 영화에서만 가능했던 기법을 연극에도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르네상스 이래 연극을 위한 유일한 공간으로 간주되었던 극장이라는 공간이 위계적이고 일방향적인 재현 장치라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현대인의 확장된 공간 감각이 촉매가 되어 극장에서 벗어나 연극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전개되었다. 기차역 대합실, 공장, 공원 등 현실 공간에서 진행되며 현실, 배우, 관객의 현존을 자각하고 사회적 맥락을 성찰하게 하는 장소특정적 연극이 그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영상 매체의 등장과 그로 인한 지각 방식의 변화는 여러 측면에서 연극의 혁신을 추동한 기제였다. 그러나 영화 태동기에 영화가 연극을 준거 삼아 자신만의 본질을 모색했던 것처럼, 영상매체 시대의 도래는 연극계에서 ‘영화를 닮아 가려는’ 경향보다는 오히려 연극이 가지고 있는 본원적인 성질을 모색하고 그 잠재력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일깨웠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연극은 연극이 지닌 일회성과 현존성, 물질성을 고유한 감각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연극적 물질성에 대한 탐색이 영화에서는 4D, VR, AR 등의 기술 혁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 역사적 궤적은 영화와 연극 사이에 한 매체의 영향이 다른 매체를 포섭하고 장악하는 양상보다는 서로를 축으로 삼아 변화를 꾀하는 변증법적인 역학 관계가 존재하며, 그 상호작용을 통해 예술이 보다 다양하고 확장된 언어를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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