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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0.01 베를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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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0.01 베를린

Time Fold 2020. 1. 19. 07:45

1. 메테 잉바르센 Manual Focus, Gropius Bau, 2020.1.18

<69 포지션>에서도 잠깐 언급된 공연이다. 세 명의 나체 여성 퍼포머들이 늙은 할아버지 마스크를 뒤집어(말 그대로 뒤통수에 마스크 얼굴이 오게) 쓰고 계속해서 다른 배열과 형체들을 만든다. 언캐니하다. 성별, 나이, 위아래, 앞뒤, 정상과 비정상이 끊임없이 뒤섞인다. 어떻게든 그 구분을 계속해내려는 관객의 인식적 시도(그 미끄러짐에서 발생하는 웃음)가 어느 시점에서는 무색해진다. 공연 후반부에 가서 세 명이 모두 벌떡 설 때, 그러니까 마스크와 몸이 모두 처음으로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선 나름 '정상적'인 포지션이 만들어질 때, 그게 제일 기괴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어떤 신체 지각의 엉크러짐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디어도 훌륭하고, 초반에 강렬한 순간도 있지만, 40분이라는 길지 않은 공연 시간을 더 다양한 층위에서 밀도있게 조직해내는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2. 메테 잉바르센 evaporated landscapes, Gropius Bau, 2020.1.18

퍼포머가 등장하지 않는 온리 장치 공연이다. 연기와 거품과 조명과 비눗방울로 여러 자연의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작은 산봉우리와 안개와 구름과 반딧불이와 화산 폭발과 햇살과 무지개가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어쩌면 공연이라는 예술 형식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유한한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무게가 없는 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등장했다가 중력에 구애받지 않고 찰나에 타올라 없어지는 것들. 또 아주 미미한 무게로 바닥으로 가라앉아 조용히 녹는 것들. 작품 설명에도 나와있듯, 이 공연은 "안무를 시공간 안에서 신체를 조직하는 행위가 아니라, 덧없는ephemeral 요소들 간에 작동하는 관계"로 본다. 물론 무지개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조금은 감상적인 스펙터클이 됐다.

//// 두 공연은 CONNECT, BTS가 후원하는 Rituals of Care라는 전시의 일환으로 열렸다. 커넥트, BTS는 5개 도시의 큐레이터가 모인 '글로벌 이니셔티브'란다. 심지어 '다양성, 사랑, 주변부에 대한 관심'이라는 BTS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단다. 스팡베르크씨! 지금 문화와 예술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이미 산업이 예술을 이렇게 열심히, 적극적으로 잠식해 나가고 있다고요.

3. 수잔네 케네디 Ultraworld, Volksbuühne, 2020.1.18

현재 독일 연극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젊은 연출가로 꼽힌다. 사막과 물부족 현상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속에 갇힌, 한 백인 남성 아바타의 탈출시도기다. 게임 아바타를 인간 배우가 프로시니엄에서 사실적으로 연기하는 그 순간부터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스럽게 적당히 픽셀화된 영상을 프로젝션 하고, 미래적인 의상을 입고, 배우가 직접 목소리를 내는 대신 더빙 목소리를 쓴다고 해서 근본적인 연극적 규칙을 조금이라도 흔들 수 있다면 오산이다. 전통적인 연극의 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 시스템으로부터의 출구를 언급할 수 있는지 의아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탈출에 실패한 남자는 결국 마약에 소구하고 (마약이 주는 환각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연기하고) 결국 '오라클' 같은 나이 많은 여인이 등장해서 차를 따라주면서 '출구는 네 안에 있다'는 결말. (젊지만) 낡은 연극인이 오늘날 포스트인터넷 디지털 세계에 발맞춰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마구 뱉어낸, 미성숙하고 히스테리적인 반응처럼 보였다. 회사의 나이 많으신 부장님이 전혀 맞지 않는 맥락에서 ㅇㅈ? ㅇㅈ. 이런 말 쓰는 느낌. 그에 비하면 김희천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감각이 훨씬 더 실제적이고, 그가 제안하는듯한 '탈신체'의 시도들이 훨씬 더 설득력있는 탈출 전략 같다. 이러나 저러나 관객 반응은 최고였다. 딱 이 정도 새로움에 만족하며 내일이면 다시 익숙하고 안정적인 아날로그의 일상으로 돌아갈 유럽 중산층의 자위 정도로 느껴졌다면 너무 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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