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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gard Haug, Rimini Protokoll <All right. Good night.> 본문

Review

Helgard Haug, Rimini Protokoll <All right. Good night.>

Time Fold 2024. 8. 17. 22:31

2023.08.23, Zürcher Theaterspektakel

작품 내내 극장에 맴돌았던 상실의 정동이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팩트", 즉 현실의 사건을 가지고도 어떻게 작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이렇게 극적인 효과가 나올 수 있다.
아버지의 치매와 실종된 비행기라는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야기를 정말 미세한 단위에서 촘촘하게 엮였다. 텍스트 한줄 한줄 교차될 때마다 두 사건이 날실과 씨실로 엮인다. 어느 순간에는 한 대사가 어떤 사건을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진다. 인간의 뇌라는 미지의 망망대해와 말 그대로 태평양의 망망대해가 어느 순간 완벽하게 중첩된다. 이미지로는 재현되는 것이 전혀 없었고 스크린에 투사되는 건조한 텍스트만 있었는데도 오히려 많은 것들이 내 머릿속에는 이미지로 남았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공백으로 사라져버리는 것들. 인간의 의지로 움켜쥘 수 없는 것들. 조각조각나서 흩어져버리는 것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 그리고 아주 드물게 해변에 떠밀려 내려오는, 그렇게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조각들. 그 모든 것이 가라앉아 수천만년의 세월에 거쳐 누적된 심해의 계곡들. 

라이브로 연주된 실내악 음악은 내용과는 조금씩 엇각으로 병치되었다. 슬픈 대목에서 슬픈 음악이 나오지 않아서 신파로 치닫지 않았다. 비극적이고 슬픈 개인의 이야기가 집단의 차원으로, 더 나아가서는 지구의 역사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그 거대한 시공간의 스케일이 좋았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그렇게 우리 손아귀를 빠져나가 소멸되는 것들은 슬프고 덧없지만, 어딘가 아름다운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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